미국 의료 보험 선택하기
아내가 처음으로 포닥으로 일을 시작하면서 급하게 공부해야했던 여러가지 중 하나가 미국의 의료보험 제도였다. 건강보험료만 내면 모든게 해결되는 한국에서 (그것도 월급에서 공제되었으니 사실상 신경쓸 건 아무것도 없었던), 전세계적으로 악명높은 미국의 의료보험 제도를 보고있자니 당최 뭔소린가 싶었다.
당연히 중요한 디테일들이 훨씬 많이 있지만, 미국의 의료보험을 대략이나마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알아야하는 숫자와 개념들이 몇 가지 있다. 우선 미국에서 몸이 안좋으면, 일단 본인의 주치의 (PCP, Primary Care Provider) 를 방문해야한다. 주치의가 상태를 보고 해결할 수 있다면, 처방을 해준다. 만약 주치의가 보고, 전문의 (Specialist)를 방문해야한다고 판단하면, 어떤 전문의에게 갈지 지정해서 Referral (진료 의뢰서)를 써준다. 진료 의뢰서가 없다면 전문의를 만날 수 없다.
주치의와 전문의를 고를 때에도, 내가 마음에 드는 아무 의사에게나 갈 수 있는건 아니고, 내가 가입된 보험과 계약이 된 의사 (in-network)에게만 방문할 수 있다. 그래서 주치의를 지정하거나 referral을 받을 때, 항상 내가 가진 보험을 고려해야한다. 계약이 되지 않은 의사(out-network)에게 가면 보험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것은 기본적인 틀일 뿐이고, 자본주의의 나라 답게 더 비싼 보험료에 가입되어 있다면 referral이 없어도 전문의를 바로 방문할 수 있고, out-of-network도 약간의 추가금과 함께 방문할 수도 있다.
모든 방문에는 돈이 든다. 그리고 이 돈을 줄이기 위해 보험을 드는 것이니 상품을 잘 선택해야하는데, 대략 주요하게 비교해야하는 숫자들을 보자면 아래와 같다. (이 이상으로는 나도 잘 모르겠다. 고지서가 오면 욕 한 번 하고 결제하면 된다.)
- Deductible : 내가 내는 의료비가 이 값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보험이 돈을 내주지 않는다. 보험의 혜택을 받기 위해 내가 병원에서 우선적으로 써야하는 최소 금액이라고 보면 된다. 낮을 수록 좋다.
- Copay : 의료 보험 혜택을 받을 때, 내가 내야하는 분량의 금액이다. 예를 들어, 의료비 지출이 이미 Deductible을 넘어선 상태에서 전문의를 방문했다면, 나는 Copay 만큼의 돈만 내면 되고, 나머지는 보험이 내준다. 낮을 수록 좋다.
- Out-of-pocket maximum : 내가 지출하는 최대 금액이다. Deductible을 넘어서 Copay 등의 기타 금액이 쌓여서 이 금액에 도달하면, 나는 더이상 돈을 내지 않는다. 모든 비용을 보험사가 지불한다. 낮을 수록 좋다.
보험 상품의 비교를 위해 Aetna의 두 상품을 보자. (이것들 위아래로 항목들이 엄청나게 빽빽하다.)
좌측 상품의 Deductible을 보면, in-network가 $1,000 이므로, 내가 병원에서 $1,000를 쓸 때 까지는 보험이 없다고 보면 된다. out-of-network는 아예 보험이 적용되지 않으므로, 대부분의 치료비를 내가 부담해야하며, out-of-network 병원에서 얼마를 쓰건 Deductible인 $1,000에 반영되지 않는다.
반면에 우측상품은 Deductible이 in-network, out-of-network 모두 $0이다. 즉, 내가 우선적으로 내야하는 의료비가 없다는 것이므로 좌측보다 상황이 훨씬 좋다. Out-of-pocket maximum도 더 낮다. 아무리 많이 아파도 1년에 $8,900 이상은 내지 않는다. (1200만원..ㅎ)
두 번째 내용은 Doctor visit에 대한 copay인데, 둘 모두 out-of-network인 의사에게 방문할 경우 in-network인 의사보다 더 많은 금액을 내야한다. 주의해야하는 점은 Doctor visit은 말 그대로 진료를 위해 의사를 방문하는 행동이다. 검사와 치료는 별도로 청구된다. 사실상 매우 급한 경우가 아니라면 out-of-network 의사를 방문할 이유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어디 용하다는 의사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에는…
이정도로 비교해보면 오른쪽 보험이 더 좋다. 다만, 개인적의 사정에 따라서 유불리가 변할 수 있으니, 특이사항이 있는 경우 더 꼼꼼한 확인이 필요하다. 이제 문제는 월 납입금인데, 이 부분 역시 회사마다 천차만별이다. 각 회사들이 제공하는 보험사와 보험 상품이 다르고, 각 상품마다 내야하는 금액이 다르므로 잘 살펴보아야한다. 얼마나 좋은 보험상품을 얼마나 싸게 제공하느냐가 그 회사의 의료 복지 수준을 나타내게 되는데, 요즘은 위고비 같은 상품도 보험처리를 해주는 경우가 있다고 하니, 모르겠다면 ChatGPT에게 적극적으로 물어보자.
아내가 포닥으로 있는 연구소가 제공하는 의료 보험이 상당히 좋은 편이다. 그래서 꽤 좋은 상품에 가입할 수 있었고, 아직까지는 큰 문제 없이 생활하는 중이다. 지금은 월 납입금도 면제가 되는데, 이 혜택이 사라지면 좀 더 고민을 할 것 같다.
아, 위의 모든 내용은 medical, vision, dental 에 대해서 따로 적용되며, 1년 단위로 갱신된다ㅎㅎㅎㅎ. 미국 의료 산업 망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