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행이 결정된 시점에 아내는 서울의 한 대학 연구실에서 포닥 연수 중이었고, 나는 서울의 IT기업에서 직장생활 중이었다. 미국으로 함께 가기로 결정한 이상 나의 퇴사는 정해진 수순이었으니, 이를 최대한 빠르게 회사에 알렸다. 이 시점이 출국하기 약 6개월 전이다. 퇴사는 회사에 최대한 늦게 알리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이곳저곳에서 많이들 한다. 하지만 회사에 불만이 쌓여서 퇴사를 결정한 것이 아니었고, 회사에 대한 충분한 애정이 있었기에 빠르게 알리기로 했다. 회사 입장에서도 미리 알게되는 것이 여러모로 좋을 터였다. 실질적인 퇴사 시기를 조율한 결과, 미국으로 출국하기 약 2달 전에 퇴사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IT기업이다보니 원격 근무도 가능하긴 했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 사이에는 원격 근무를 하기에 녹록치 않은 시차가 존재했고, J2 비자로 미국에 입국하는 경우 경제활동이 불법이기 때문에 일을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퇴사한 뒤, 출국까지 약 2달 정도의 시간이 주어졌고, 주로 집을 정리하거나, 운동을 하면서 지냈다.
퇴사 이후에는 시간이 날 때마다 주변 친지들이나 친구들과 만나면서 미국행을 알리고, 송별회 비슷한 자리를 자주 가졌다. 대부분의 자리에서 사람들의 반응이 비슷하다는 점이 재미있었는데, 거의 모든 분들이 우리 부부가 미국에 정착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점을 축하해 주시면서도 부러워하셨다. 5년 내에 국내로 복귀하는 것이 목표인 우리로써는 다소 당황스러웠다. 친구들에게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직접 물어봤는데, 부부가 같이 나간다고 하니 당연히 이민을 고려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괜히 "우리도 이민을 고려해야 하는건가?"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아직까지는 국내로 돌아와서 한국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압도적으로 크다. 미국에서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커리어를 쌓다보면 또 어떻게 상황이 달라질지는 잘 모르겠다.
IT산업에서 일하는 입장에서, 미국은 어떻게보면 기회의 땅이다. 전 세계의 뛰어난 인재들이 모여들고, 모든 IT 혁신이 일어나는 곳이다. 개인의 커리어를 쌓을 수 있고, 한국과 비교하면 훨씬 높은 수준의 연봉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선뜻 미국으로 떠나기는 쉽지 않다. 한국에는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나의 삶이 있으니까. 이런 것들을 모두 내려두고 외국으로 떠나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결정이다. 이런 모든 것을 감수하고도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이 또는 이루고 싶은 바가 있는 사람들이 해외로 떠난다. 그리고 나는 그런 아내를 만났기에 미국으로 함께 간다.
아내가 나를 이끌고 미국으로 나가는 모양새지만, 사실은 나에게 있어서도 그리 나쁜 기회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미국이라는 더 넓고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경험과 커리어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다른 한 편으로는 새로운 곳에서 잘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도 있는데, 사실 미국으로 훌쩍 떠나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이런 두려움이 아니었나 싶다. 어쩌면 유일한 이유인지도 모른다. 정말 잘 할 수 있을지, 나의 능력은 충분한지, 매 순간 나를 증명해낼 수 있을지와 같은 두려움이 결국 다른 이유들를 만들어내고, 그것들이 파란 약이 되어 한국에서의 삶을 만족스럽게 영위하도록 나를 이끌고 있지는 않았나..
J2 비자로 입국하면 노동허가서(EAD)를 발급받기까지 몇 개월이 소요되고, 그 동안은 경제활동을 할 수 없다. 노동허가서를 발급받은 뒤에는 완전한 이민자의 입장에서 새로 무언가를 시작해야 하는데,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또 어떤 여정이 기다리고 있을지 전혀 모른다는 점에서 걱정 반 설렘 반이다. 같은 IT기업이라도 한국과 미국의 기업 문화는 매우 다르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왔다. 실제로 한국인들이 미국 기업에 취직했을 때 겪는 공통적인 어려움이 있다고하니, 나도 예외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왠지 조금 더 잘 해낼 수 있지 않을까 괜히 생각해본다.
퇴사 후 최소 5개월은 이런 상태가 지속될 예정이다. 대학 졸업 이후 지금까지 이런 공백기가 없었기 때문에 조금 어색하다. 하지만 어찌보면 난생 처음으로 어떤 모습의 인생을 살지, 어떤 일을 하면서 살 것인지, 나에 대해서 차분하게 고민해볼 수 있는 시기가 아닌가 싶다. 고민의 결론이 어떻건, 아직은 얼마 지나지 않은 인생에서 매우 큰 분기점을 맞이한 것은 분명해보인다. 어떤 분기로 이끌리건, 즐거운 방향이면 좋겠다. 요즘 이런 생각과 고민을 계속 해서인지, 가수 안예은님의 노랫말이 머릿속에 멤돈다.
인생을 안다면 신선이라, 어찌 사람이겠소.
배 위에 이 한 몸 올랐으니, 어디라도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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