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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수 준비 과정

미국 포닥 준비 5. 미국으로 짐 보내기 ( 대형 캐리어 / 기내 수화물 / 드림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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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당분간 미국에서 살아야 하니, 한국에서 사용하던 많은 것들을 미국으로 옮기거나 처분해야 했다. 집, 자동차, 가구, 가전 등 큼직한 것들은 물론이고, 옷이나 식기류 같은 사소한 것들까지 모두 처분해야 했다. 우선 우리는 짐을 세 가지로 나누었다: 

1. 한국에 보관할 것

2. 미국으로 함께 가는 것

3. 버릴 것


한국에 보관하는 짐들은 양가 부모님 댁에 당분간 쌓아두기로 했다. 흔히 “신혼 가전”이라고 부를만 한 냉장고, TV, 세탁기 등의 대형 가전과 일부 귀중품들은 처가의 아내가 사용하던 방에 쟁여두기로 했고, 예비군복 같은 내 짐들은 본가 창고에 보관하기로 했다. 주변에서는 다들 일단 처분하고 돌아와서 다시 사는 것이 이득이라고 했다. 몇 년 지나면 가전제품들도 구형이 될텐데, 그때 가서 그걸 다시 사용하겠냐고... 일리 있는 말이긴 하지만, 그래도 냉장고 세탁기 같은 것들은 10년도 거뜬히 사용하지 않던가. 몇 년 지난다고 사용하지 못할 리 없다. 더군다나 지금 처분하기엔 새 제품으로 구입한지 1년이 채 되지 않는 것들이라, 짧은 기간동안 얻어맞은 감가상각을 대면하기 두려워 일단 보관하기로 했다. 그 대신, 우리가 나가있는 동안 처가에서 필요하신 가전이 있으시면 얼마든지 사용하시도록 말씀드렸다.


미국으로 함께 가는 짐들은 우리가 이고 지고 함께 가야했다. 이것들을 담기 위한 대형 캐리어를 2개나 추가로 구입했고, 조금이라도 더 들고가기 위한 기내용 캐리어도 하나 구입했다. 대형 캐리어로는 32인치 캐리어를 사려고 했는데, 우리가 타고가는 비행기의 수화물 제한을 초과하는 규격이라 28인치 캐리어로 장만했다. 

우리가 캐리어에 눌러 담은 짐은 대부분 옷이었다. 미국과 한국은 옷 입는 것이 너무 달라서 대부분 다시 사야한다고해서 최대한 무채색의 단순한 기본 아이템들 위주로 챙겼다. 미국은 패브릭 제품의 질이 한국보다 많이 떨어진다고 하여, 침대 커버와 여름용 얇은 이불도 압축해서 넣었다. 우리가 살게된 지역은 뉴욕이었는데, 뉴욕의 날씨는 서울과 크게 다를바가 없다고 한다. 날씨에 적응하기는 수월하겠으나, 사계절 옷을 모두 챙겨야한다는 뜻이었다. 다행이 미국으로 이동하는 시기가 여름이라 가벼운 옷들 위주로 챙겼다.

한국에서 챙겨가야하는 것들에 대해서, 미국 생활을 경험하신 분들에게 조언을 구해 몇 가지를 챙겼다. 모두가 하나같이 입을 모아 한국에서 챙겨가라고 한 품목은 예상 외로 고무장갑, 지퍼백, 수세미 같은 주방 용품들이었다. 생각보다 너무 저렴하고 한국에서는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들이라 좀 당황스러웠지만, 다같이 입을 모아 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으려니 싶어, 이것들도 한 벌씩 챙겨 넣었다.

많이 줄였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뭔가 많았다.

 

직접 가져가기엔 너무 큰 것들과 겨울에 입을 옷, 침구 등은 선박우편을 통해 미리 부쳤다. 선박우편은 현대 해운에서 제공하는 드림백이라는 서비스를 이용했다. 이민가방 하나를 미국으로 운송해주는 서비스로, 선박을 통해 운반한다. 뉴욕까지 부치는 비용은 가방 하나당 25만원 가량이고, 후기를 찾아보기 몇 개월은 걸리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드림백 1개를 신청했고, 시간을 감안하여 주로 겨울 옷이나 이불을 담아서 먼저 보냈다. 적당한 시기에 도착하길... 그리고 그 때 쯤이면 우리도 미국 생활에 어느 정도는 적응했길 바래본다.

 


이도저도 불가능한 짐들은 어쩔 수 없이 폐기처분했다. 사실 우리 집에 버릴만한 것이라곤 없었다. 하나같이 모두 사용하고 있거나, 사용할 예정이거나, 어딘가에 쓸모가 있는 물건이었다. 전혀 쓸모가 없어 보이는 것들에는 추억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한국에 남길 수 있는 짐의 용량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고, 그 마저도 상당히 빡빡한 편이었기 때문에 많은 아까운 물건들이 결국 버려지게 되었다. 그래도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에는 당근을 적극활용했다. 컴퓨터/모니터 같은 생활가전이나 악기 같이 값이 조금 나갈만 한 것들은 주로 당근을 통해 처분했다. 하지만 시간이 점점 촉박해졌고, 결국 마지막에는 피난가는 사람들마냥 필요한 옷가지와 생활에 꼭 필요한 것들만 들고 나온채로, 집에 남아있는 모든 것을 버렸다. 숨고를 통해서 집안의 폐기물 수거 서비스를 받았는데, 폐기물 수거에만 70만원이라는 거금이 들었다. 추억만큼은 지켜보려 했지만, 그 마저도 여의치 않아 기억이 또렷한 것들 위주로 남겨졌고, 대부분이 폐기되었는데, 어떤 것들이 버려졌는지도 벌써 기억이 가물하니 아쉬워할 도리조차 없다.


이제 한국에서의 것들은 모두 정리했다. 이번에 서울에서 살던 거처를 정리하면서, 한 가족의 삶의 터전을 이루는 요소가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느꼈다. 고작 우리 두 사람의 주거지를 한국에서 미국으로 옮기는 것일 뿐인데도, 이것 저것 처리하는 데에만 한 달이라는 시간이 꼬박 소요됐고, 그 마저도 매우 촉박하게 흘렀다. 다음 번에 미국에서 한국으로 옮겨올 때에는 조금 더 홀가분하고 가볍게 옮겨올 수 있기를 바래본다.

이제 우리만 미국으로 넘어가서 잘 정착하면 될 일이다. 아내는 조만간 포닥으로서 연구 활동을 시작할 것이고, 나도 천천히 할 일을 고민해봐야 한다. 미국에서 또 별 일을 다 겪겠지만, 뭐 어떻게든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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