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내는 국내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얼마 전까지 짧은 휴식기를 가졌다. 그러는 동안 내가 직장을 다니고 있는 서울로 거처를 옮겼다. 만족할 정도로 길지는 않았지만, 쉬는 동안 향후 진로와 인생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하고, 서로 대화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좋았다. 서울에서 IT회사를 다니고 있던 나와는 다르게 아내는 연구를 계속해서 하고 싶어했다. 국내에서 그 길을 찾아보려 했지만, 국내에서는 아무래도 쉽지 않았다.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미국으로 박사 후 연수를 가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에 다다랐는데, 유학은 생각보다 선뜻 선택하기 쉬운 길은 아니었다. 과정과 고민이야 어찌됐건, 결국 아내는 미국으로의 포닥 연수에 도전하기로 했고, 간다면 나도 함께 가기로 했다.
일단 도전이 결정되고나니 일은 꽤 빠르게 진행됐다. 아내가 맨 처음으로 한 일은 미국에 있는 관련 분야의 연구실을 모조리 정리하는 일이었다. 국내를 목표로 했다면 그 정도는 아니었겠지만, 넓은 미국 지역에 퍼져있는 대학과 연구기관들까지 합치고보니 그 리스트가 상당히 길었다. 세상에 그렇게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을 줄이야.. 리스트가 완성된 뒤에는 각 연구실의 연구 분야를 살펴보면서 제외시켜나갔다. 본인의 관심 분야와 전공 분야에서 크게 벗어나는 연구실들을 걸러냈더니, 처음에는 끝도 안보이던 연구실 리스트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며칠 후 다시 보니, 여전히 만만치 않은 길이를 자랑하고 있었지만 리스트가 꽤나 짧아져있었다. 리스트를 두어 차례 추린 뒤에는 한층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관심이 조금이라도 가고, 흥미를 느낀 연구실에 대해서는 최근 연구 논문들을 찾아보면서 리스트를 조금씩 더 줄여나갔다.
내가 Notion에 자료를 정리하는 걸 좋아해서, 아내와 결혼을 준비할 당시에 Notion 페이지를 많이 활용했었는데, 그 때는 나보고 Notion 덕후니 뭐니 그러더니 이제는 자기도 Notion에 연구실을 정리하고 있었다.
중간중간 여긴 어때서 좋고, 저긴 어떤 연구가 흥미로운지 설명해줬다. 잘 모르는 입장에서도 흥미롭게 들리던 몇몇 곳들이 있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려니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듣고 돌아서는 순간 모든게 휘발되었나보다. 어쨌거나 본인이 흥미를 느끼고 마음이 가는 곳일테니, 그 중에 한 곳으로 갈 수 있으면 좋겠거니 싶다.
길고 길었던 리스트를 이리저리 따져보면서 극한까지 추려내니 제법 끝이 보이는 리스트가 됐다. 정확히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열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는 정도였다. 그 뒤에는 관심 정도와 우선순위에 따라 1순위로 분류된 몇몇 연구실의 교수에게 cold mail을 보냈다. 사실 포닥을 진학하는 경우, 박사 과정 지도교수님이 소개나 연결을 해 주시는게 가장 좋다는 것 같다. 아무래도 학계의 인맥이나 영향력이 갓 박사를 졸업한 사람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테니.. 하지만 아내는 이런 방식이 여의치 않았다. 포닥을 지원하면서 박사 과정 대비 연구 분야를 바꿨다고 하는데, 그게 영향을 끼쳤나보다.
Cold mail을 보낸 뒤에는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1순위로 메일을 보낸 연구실에서 긍정적인 답변이 오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2순위의 연구실에 연락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해두었다. 사실 부정적인 답변이라도 오기나 할까 걱정이었다. 동방의 작은 나라에서 보내 온 메일을 열어봐주기나 할까하는 걱정과 함께 기다렸다. 나만 하더라도 직장 동료로 외국인이 들어온다고하면, 마음에 부담이 조금이라도 생기는 것이 당연한지라 아내와 함께 불안해하며 기다렸다.
부정적인 답변이라도 좋으니, 답변을 주세요. 그래야 다음 순번으로 메일을 보내죠...
운이 좋았던 것인지, 역시 미국은 다양성의 나라이기 때문인지, 아내가 1순위로 보낸 메일에 면접 일정을 잡자는 답변이 왔다. 메일을 열어보지도 않을까 않을까 걱정했는데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로는 일이 생각보다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미국과 한국은 아무래도 시차가 있다보니 일이 지지부진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시차가 톱니처럼 맞물려서 하루가 다르게 일이 진행됐고, 어느새 면접 일정이 잡혔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일이 이렇게 착착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아내가 지원한 교수가 일을 처리하는 템포가 매우 빨랐기 때문이었다. 자칫 느긋한 성격의 교수였다면, 시차로 인해 일처리가 한층 더 지연될 뻔 했다.
코로나 이전에는 포닥을 위한 면접도 모두 미국에 직접가서 진행했다고 하는데, 코로나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나보다. 하긴 요즘 미국의 IT 기업들은 원격 근무도 많이 한다고 하니, 면접 정도는 놀랍지도 않은 일이지 싶다.
면접 일정이 잡힌 뒤, 아내는 면접 준비에 돌입했다. 면접을 볼 연구실에서 발표한 최근의 논문들을 공부했고, 연구실이 어떤 방향의 연구를 진행하는지 파악했다. 아내가 학위 과정에서 진행한 연구가 그들과 어떻게 융합될 수 있는지, 어떤 강점을 가지고 있는지 등등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 정확히 파악하긴 좀 어렵지만, 결국 포닥도 하나의 직업이니 고용을 위한 면접이고, 그렇다면 취직을 준비할 때 필요로하는 것과 큰 결에서는 특별할 것이 없어 보였다.
잠을 줄여가며 면접 준비를 하더니, 어느 새 면접도 호다닥 지나갔다. 연이어 이틀간 진행된 면접에서는 교수는 물론이고, 연구실의 모든 인원들과 짧은 인터뷰를 진행했다. 모두와의 인터뷰가 끝난 뒤, 교수와 마지막으로 면담이 잡혔다. 면접 첫 날부터 빡빡하게 진행한 뒤, 아마 구성원들끼리 의견도 나누고 논의도 했던 것 같다. 조금 놀라웠던 건, 교수와 진행한 마지막 면담에서는 최종적인 결과를 바로 들었다는 부분이었다.
You're hired.
생각지도 못한 빠른 결정에 조금 얼떨떨하긴 했지만, 그렇게 아내가 포닥으로 연수할 연구실이 결정됐고, 우리의 미국행이 확정되었다. 옆에서 그 과정을 보고 있자니 상당히 흥미로웠다. 큰 틀에서는 일반적인 회사와 유사한 측면이 있는가 하면, 연구라는 분야가 갖는 특수성이 반영되는 측면도 있어서, 이런 부분을 기록으로 남기면 재밌을 것 같다.
실제로 미국에 가서 일을 시작하기까지 앞으로 남은 절차들도 많고, 처리하고 정리할 것들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아무래도 삶의 거처를 크게 옮기는 것이니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많이 있겠거니 싶다. 재미나게 구경해야지.
'미국 연수 준비 과정'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국 포닥 준비 5. 미국으로 짐 보내기 ( 대형 캐리어 / 기내 수화물 / 드림백 ) (0) | 2024.05.29 |
---|---|
미국 포닥 준비 4. J1/J2 비자 인터뷰 (0) | 2024.04.22 |
미국 포닥 준비 2. J1/J2 VISA 신청 서류 (DS-2019 / SEVIS / DS-160 / VISA 인터뷰 예약) (0) | 2024.04.22 |
미국 포닥 준비 3. DS-160 준비 서류 (1) | 2024.04.19 |
미국 포닥 준비 1. 세종 과학 펠로우십 지원 (0) | 2024.04.14 |